5월은 가정의 달이라하여 어린이 날을 시작으로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등이 있다. 그러나 가정의 핵심인 ‘부부의 날’이 왜 없을까 생뚱맞은 생각을 해본다. 이혼율이 늘어나고 핵가족화되어가는 가정에서 부모로서 또는 자식으로 한 가정을 이끌고 있는 부부를 1년에 한번만이라도 새롭게 조명하여 문제점을 되새겨보는 부부의 날 제정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물론 많은 부부는 결혼 기념일을 지키면서 매년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등산(부부-I)과 전철역(부부-II)에서 만난 두 부부의 모습 속에서 느낀 바를 적어 본다.

부부-I
부부란 남편과 아내이고 영어로는 Couple이니 글자 그대로 부+부, 1+1 한쌍이다.
우리 옛말에 夫唱婦隨라는 말이 있다.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글로는 같은 음이니 여권이 많이 신장된 요즈음에 걸맞게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婦唱夫隨라 하여 아내가 주장하고 남편이 따른다고 주장한들 어떻겠는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동네 뒷산에 올랐다. 용인 죽전으로 이사 온지 10개월,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의 뒷동산엔 새봄의 푸르름이 상쾌하고 여기 저기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가 평화롭다. 우스개 소리로 죽기 전에 와서 사는 곳이라하여 죽전이라 부른다 해서인지 야트막한 산에는 초로의 등산객이 많이 눈에 띈다.
정상에 올라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70대 부부가 앉아 쉬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요가의 숨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부인은 남편의 설명대로 숨쉬기를 열심히 따라한다. 부인에게서 남편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약한듯한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쳐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요새 회자되고 있는 소위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생각났다. 50, 60대가 되면 집에서 죽어지내야지 큰소리치다가는 쫒겨나기 십상이라는 우스게 소리이다.
근래에는 여권이 많이 신장되어 집안에서 남자들의 입김이 많이 약해졌다. 여권 신장과 함께 우리나라의 이혼율도 이제 선진국을 앞서간다 하니 여권 신장과 이혼율의 증가가 서로 상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꼴통일까.
‘나는 간 큰 남자’ 라고 술자리에서 큰 소리치면서 무용담을 이야기하듯이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도 막상 가정에서는 부인에게 꼼짝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현상들은 남편들이 자신들의 할 도리를 제대로 안한 자업자득이리라.
삼강오륜과 칠거지악 등 유교로 무장된 조선 시대가 망하면서 남편의 가부장적인 위치도 많이 변해 이제는 간큰 남자 시리즈까지 등장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육이오 등의 환란에서 가정을 지키고 어려운 가정 경제에서 정작 힘을 발휘한 것이 여인네들이요, 치마바람으로 부를 축적하고 아이들 교육에도 열을 올린 것이 여인들이였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많이 인용되는 성경 말씀의 에베소서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와 같이 아내는 아비를 따르고 아비는 아내를 자기 목슴보다 더 귀히 사랑해야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이다.
이 성경말씀이 夫唱婦隨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나 부창부수에는 아내 사랑이 빠져 있고 어딘지 남성 권위주의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서구 사조가 밀려오면서 인종(忍從)과 순종만을 요구해 온 우리 전래의 부덕이 판단받으면서 부부 간의 새로운 관계가 요구되고 있다. 더욱이 요근래 남자들이 사오정, 오륙도라하여 직장에서 조기 퇴출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전래의 부부관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새로운 질서와 시대 상황에서 우리 부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남편들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적인 위치를 찾으려고 가정에서 핏대를 올리기 보다는 사랑으로 아내를 감싸주고 아껴주는 성숙된 남편상을 보여야겠으며, 아내들은 우리 전래의 부덕과 삼강오륜의 의미를 되새겨 이 시대의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소외되고 있는 가장의 어려움을 과거의 환란을 통하여 발휘한 어머니들의 강인한 정신으로 극복하고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부부간의 금슬을 아름답게 이어가도록 해야 하겠다.

부기 : (본문에서 잘라낸 글들)
1)권위란 누가 주기 전에 스스로가 지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갈 때 가정에 질서와 평화가 깃들지 않을까.
2)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출가외인이라하여 시집온 아낙네가 친정을 잊고 부덕을 쌓으며 남편을 섬기고 자녀를 양육하는데 소홀히 안하였다.(출가란 세속을 떠나는 것이기에 혹이나 여인의 출가도 이에 비견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해석을 해본다.)
3)옛날에는 못난 남편일지라도 아낙네들이 지아비의 권위를 세워주고 섬기는 모습들을 많이 볼수 있다.
4)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의 대소사에 대하여 결정하고 가정을 돌보고 이끌 책무가 있다.
5)변화된 가치관과 환경에서 옛날 이조시대의 권위를 찾으려고 남편이 목에 힘을 주다보니 부부간의 관계가 더욱 더 악순환만 초래하게 된다.
6)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속에서 우리 전래의 부부상을 이어가고 있다.
7)육이오 전쟁과 월남과 중동의 사막에서 피와 땀을 흘리고,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공장과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가장들이 가정에서의 할 바를 여인네들에게 내어 주면서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많이 약화되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다.

삼강오륜에서의 부부유별은 남자로서의 남편[夫]과 여자로서의 아내[婦]가 부부로서 살아가는 데 분별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분별함이란 남편은 남편으로서 본분이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 본분이 따로 있으니 이를 잘 헤아려서 서로 침범하지 않고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남녀유별이라는 말과 함께 남녀간의 차별이라고 생각하여 과거 봉건사회의 남존여비 사상에 나온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여기에서 유별이란, 남자는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씩씩하고 굳세며 강하고, 여자는 유순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본래의 특성을 잘 살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뜻이므로 이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윤리가 아니라 오히려 남녀간에 평등한 윤리라 할 수 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는 데에도 아버지로서의 남편과 어머니로서의 아내의 본분이 서로 다르다. 아버지는 엄격하게 대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써 감싸 주어야 자녀가 강직하고도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부부 사이가 비록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본분을 서로 지키는 분별함이 있어야 부부간의 사랑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이며, 가정생활도 원만해지고 사회도 좋아진다.
핵가족이 늘어나고 해마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현대사회에 더욱 필요한 윤리라 할 수 있다.

<부부에 대한 성경 말씀>
잠언12:4 –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골로세서 3:18,19,20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 1 to 7
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5 – 6
5.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6.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