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 하고 얼굴이 잘 생긴 가수에겐 보통의 경우 팬클럽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의 노래와 춤과 외모 등 모든 것을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희안한(?) 팬클럽이 2000년전에 생겼습니다. 그리곤 한명 두명 그 팬클럽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 팬클럽이 사랑했고 믿었고 기뻐했던 대상은 예수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 클럽에 가입했고 새로운 삶을 맛보았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감격하게 했던 것일까? 어떻게 33년밖에 살지 못했던 유대의 젊은 청년이었던 예수에게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가. 어떨 땐 그 이름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했고 외로움을 겪어야 했고 심하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게 했던 이름이었는데 왜 그들은 그 예수를 세상을 다 가지는 것보다 더 기뻐했던 것일까?

도대체 예수라는 이름에는 어떤 비밀과 사랑이 있는 것일까?
밭에 감추인 보화라는 예수는 정말 우리가 그렇게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성경은 수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예수라는 이름에 그런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성경전체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아름다운 입술을 열어 우리에게 그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너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신다. 너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다. 만약 너 혼자 이 세상에 있었다고 할지라고 예수님은 너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너를 위해 가르치셨고 너를 위해 기적을 베풀었다. 너를 깨닫게 하기 위해 병자를 고치고 물위를 걸으신 것이다. 네가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이 전하는 새로운 영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예수님이 너를 위해 물위를 걸으시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이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것은 바로 너이다. 너의 헌신과 재물보다 너를 원하신다. 너의 마음을 원하신다. 너의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이 넘치게 하여 네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뻐하길 원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이 좋아지면 네가 얼마나 기쁨으로 찬양을 부를 수 있을까? 그 모습을 그리며 예수님은 너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다. 그런 너를 꿈꾸며 너처럼 인간이 되셨다. 그런 너를 만나고 싶어서  채찍에 맞고 침뱉음을 당했고 피를 흘리셨다. 예수님은 그렇게 너를 원하시고 사랑하신다. 만약 네가 아니었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들을 너를 위해 하신 것이다. 그 만큼 너는 죄인이며 그 만큼 너는 예수님에게 값지고 소중한 존재이다.

성경인 나는 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살아 왔다. 예수님의 모든 시간이 너를 섬기는 시간이었고 예수님의 모든 공간은 너를 사랑하신 무대였음을 알리기 위해 난 존재해 왔다. 나만이 아닌 천하만물도 이것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이것을 위해 그렇게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물론 언젠가는 그 존재목적이 상실될 때, 다시 하나님이 원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인 내가 네게 무엇보다 전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은 너를 위해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너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 계신다. 너처럼 낮은 몸으로 계시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영광의 몸으로 살아 계신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자유함속에, 부유하심속에, 기쁨속에 살아 계신다. 이것을 내가 너에게 전해서 너를 예수님처럼 하늘의 보화를 가진 하늘의 시민권자가 되기 원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최고의 사랑을 성경인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성찬에서 먹었던 포도주와 떡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예수님자신을 너희에게 준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사랑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몸이 이젠 네 몸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100원의 가치가 있으면 너도 100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1000억의 가치가 있으면 너도 1000억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가치가 너의 가치이다.

그러므로 네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나는 내가 아닌 예수님이 얼마나 가치있고 존귀한 분인가를 깨달아 가겠다는 고백”이다. 너희 믿음의 선배인 바울도 이 진리(비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매일 죽는다”는 말로서 예수님만이 존귀한 분이심을 더 깊이 깨닫기를 원했다. 바울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울일 뿐이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께 붙은 가지가 되면 예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요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된다는 비밀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신다”(갈2:20)고 고백했던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바울에게 예수님께로 더욱 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게 했고 실제로 자신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께로 전진해 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믿음의 선배인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걸아가는 모습과도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기에 너도 이런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예수님과 하나되는 삶이 되길 원하신다. 이것이 네가 성전이요 신령한 집이 되어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신령함이 없는 너를 신령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은 너에게 온 것이고 너에게 예수님자신을 먹이신 것이다. 이제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다. 창조주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이름도 예수님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값지고 화려한 이름을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의 이름과 비교할 수 있는 이름이 없기에 그 이름을 우리에게 원하시고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도 예수의 이름이 너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영광의 몸이 너의 몸이어야 한다. 너는 예수님만큼 소중하며 예수님만큼 값진 존재이다.

누가 너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 외에 이런 능력으로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성경인 나는 너에게 이것을 증거하려고 이렇게 뚱뚱해져 있다. 그러나 네가 이것을 깨달으면 나는 너에게 솜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더 이상 나는 네게 짐이 아닌 기쁨이요 생명이 되고 싶다. 예수! 하늘의 사랑이요 비밀인 그 이름이 너에 마음에 차고 넘치길 나는 원한다. 그것이 내가 오늘도 너에게 노래하고 있는 이유이다.

성경은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 입술을 열어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 사랑의 노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나도, 티끌보다도 작은 나도 감히 고개를 들어 그 귀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