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강하고 싶고 부유하고 싶고 지혜롭고 싶고 높아지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옳은 것이요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아마 이 반대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강해지고 부유해지고 지혜로워지길 원하시기에 지금도 천하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눅8장에 나오는 마리아를 통해 이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리아에겐 옥합이 있었는데  그 옥합에는 강해지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고 높아지고 싶기에 그녀가 했을 많은 노력과 열심의 결과물들이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 때문에 그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부끄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아깝지도 않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귀신들린 마리아를 예수님이 고쳐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절대적인 존재가 된 이유였으며 세상의 포로가 아닌 예수님의 친구로 신부로 살 수 있게 된 이유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마리아는 강하며 부유하며 지혜로우며 사랑을 가진 참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수 있겠지요.. 나는 귀신들린 자가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과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은 모두 늙음과 죽음을 담고 있어 모두 죽음의 몸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영혼의 죄라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죄(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노예가 된 것)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만큼 크며 형벌을 받아야 할 만큼 비참하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알게 하심이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요 섬김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린 우리 영혼이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처럼, 그리고 귀신들린 마리아처럼 위기와 비참함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영혼의 죄를 심각하게 만나는 사람은 적은 듯 합니다. 영혼의 죄는 누구나에게 동일한데 사람마다 인식하는 차이가 다르며 어떤 사람은 죄를 육신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합니다.

우리가 영혼의 죄를 인식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죄는 믿음으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를 전해주실 때 그것이 “진리”요 절대적 기준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에겐 황당하기까지 한 내용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이요 핵심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며 아버지와 아들로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어 주심과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우린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믿게 되고 그 만큼 우린 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도 다 믿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일을 감당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말씀)이시지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갈수록 우린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문둥병자요 눈 먼자요 귀신들린 자들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두 축 중에 하나의 축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신앙의 축도 이렇게 설명되어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하게 되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통해 우린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부유하심에 동참한 우리의 영혼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며 살아갈 때 우린 육으로 난 육의 사람이 아닌 성령(말씀)으로 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요3장) 그러므로 우린 예수님을 통해 육신의 죄와 육신의 축복을 넘어 영혼의 죄와 축복을 보며 누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처럼 신령한 사람이 되어 죄인 중에 괴수라 고백하면서도 또한 감옥에서도 부유한자요 강한 자요 영광을 가진 자라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출 애굽한 이스라엘처럼 육에서 영으로 나와  우리 영혼의 죄와 영광이란 날개를 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날개로 우린 하나님의 품안을 어디든 날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무한한 가치들)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아버지의 계획이요 뜻일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릴 목말라 하십니다. 사마리아여인을 목말라 하셨 듯 십자가에서 목말라 하셨 듯 하나님아버지는 우릴 목말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천국과 상속자로서의 신분을 옥합으로 여길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목마름에서 해방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목말아 하실 만큼 우릴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그 하나님으로 인해 목말라야 합니다. 그 목마름을 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이란 손을 통해 영혼의 죄와 영광이란 날개를 달아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들인 우리가 함께 가져야 할 향유옥합입니다. 그 옥합을 가진 사람이 곧 세상을 이기는 강한 자요 부유한 자요 지혜과 사랑을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이들이 천사도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는 최고의 걸작품들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