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라는 배우의 죽음을 보면서 그가 출현했던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던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살아야할 이유보다 죽어야할 이유가 클 만큼 그의 삶은 불행했을까?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예쁘고 젊다는 이유도 있을것입니다.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과 젊음으로 그녀는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 갈수도 있었는데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을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며 세상에 대해, 우리 인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솔로몬의 영광도 헛되다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앞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배우의 젊음을 연기력을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나의 무엇을 안타까워 하실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얘기하십니다.
“나는 너의 영혼이 안타깝다. 솔로몬처럼 이 땅에서 영광을 누려도 그것은 곧 사라지지만 너의 영혼은 영원하다. 나의 관심은 너의 영혼이 살아나고 춤추는 것이란다”
우리가 이은주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영혼을 안타까워하심을 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나라를 맞이할 예복을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초대가 나의 영혼을 흔들어 깨웁니다.
나의 영혼이 살기 위해 필요한 양식을 예수님을 통해 공급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살게하고 열매맺게 하는 하늘의 양분입니다.

그 양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완전과 거룩과 영광이 우리 영혼을 살리는 양분입니다. 그 양분으로 우린 예수님처럼 완전과 거룩과 영광이란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는 이 땅에 있는 사람의 힘으로 맺을수도 없고 이 세상의 지혜로도 맺을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자신만이 맺을수 있는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육신을 신뢰하고 육신을 자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맺힐수 없는 신령한 열매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원하는 이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하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 열매를 우리 영혼에 맺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벧전(2:2)에서 “갓난아이들같이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산돌이신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서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이 되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무한한 가치들)이 우리 안에 있을 때입니다.
그가 신령한 제사 즉 영적예배를 드릴수 있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은주라는 배우는 자신과 세상의 힘앞에 무릎을 꿇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린 내 자신과 세상이란 무덤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 탈출구가 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손(말씀)을 잡고 탈출하여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고 거룩한 제사장들로 세워질때 우린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 되며 이은주와 같이 세상의 노예가 된 이들을 탈출시킬 “탈출로”로서 우리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귀한 부름앞에 우린 서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린 하나님이란 신령한 예복을 먼저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이란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는 그 아픔이…
그리고 온전히 접붙여져야 하는 기다림이…
우리 영혼에 하나님이란 열매가 맺히며
우리 영혼이 영원히 입을 신령한 예복이 입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