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기를…”
영화 ‘말아톤’ 계기로 본 자폐 장애인과 그 가정

서울 월계동 남선자(50.여)씨는 “내 인생은 없어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아들 허재영(25)씨가 다섯살 때 자폐 진단을 받은 뒤 남씨는 수면시간을 제외하곤 잠시도 아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어릴 때에는 신길동 복지관에 같이 다녔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3학년까지 교실 옆 자리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다. 1993년 4학년 때 서울 장지동 특수학교로 옮긴 뒤 2001년 졸업 때까지 왕복 세 시간이 넘는 등.하굣길을 동반했다.  

남씨는 “재영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손군의 어머니 이현숙씨도 같은 말을 했다. 차가운 현실세계에 홀로 남겨져 고통받을 자식 생각에 남몰래 흐느끼는 어머니들의 기막힌 심정이다.

발달장애인을 주제로 한 영화 ‘말아톤’이 개봉 20여일 만에 관객 수 32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7600여명. 이 중 남자가 6270명이다. 전문가들은 등록하지 않은 사람을 합하면 3만~4만명, 경미한 증세를 가진 사람까지 포함하면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들 중 기초수급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통계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자폐증은 2000년에서야 발달장애라는 이름으로 장애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동차 연료(LPG) 할인 등의 장애인 혜택 중 발달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이 생기면서 학교 교육여건은 다소 개선된 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 편중돼 있다.

더 이상의 복지 혜택은 없다. 그리고 나머지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 특히 어머니의 몫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는 ‘수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다. 의사.특수교육 전문가 등의 역할까지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돈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들어간다. 조기에 치료하면 증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들은 전 재산을 쏟아 붓는다.

서울 양재동 김영호(8.가명)군의 어머니(35)는 “심리치료.언어치료 등에 180만원, 낮에 등산.수영.일상생활 지도 등을 담당하는 개인교사에게 150만원 등 월 330만원이 들어간다”며 “분당의 45평짜리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겼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월 500만~600만원이 들었다.

서울 동작구 최모(42.변리사)씨는 “국내에서 치료나 교육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2003년 2월 아내가 발달장애인인 큰딸(12)을 데리고 호주로 갔다”고 말했다.

고교 때까지는 특수학교에 가면 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성인이 되면 그나마 갈 데가 없다. 집에 박혀 있든지 생활(수용)시설로 가야 한다.

저소득층은 치료를 엄두도 못 낸다. 그래서 언어능력이나 인지능력이 개선되지 않아 자해 등의 돌출행동이 심해지기도 한다. 견디다 못해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시립 아동병원 정성심 정신과장은 “자폐는 평생 정기적으로 치료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체계가 안 돼 있다”면서 “건강보험 적용,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립 및 독립 기거시설(그룹홈) 마련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는 우리와 대조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체텀시는 발달장애인 57명에게 주간치료 학교, 야간 그룹홈 비용으로 한 명당 연간 1억2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자폐증이란=뇌신경.호르몬 계통의 이상 등으로 생기는 장애다. 환자들은 대개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다른 사람과 사귀지 못하며▶같은 행동을 되풀이 한다. 자해.주의산만.편식.낯선 것에의 두려움.과잉반응.괴성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신성식.김정수 기자<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