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들기]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는 구절은
오해하기 참 좋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를 살려놓고 ‘데리고 노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예수 믿는 게 어떤 때 보면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은 생각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오늘 그 문제가 여기서 다 풀렸으면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것이냐 하면 이 ‘징계’라는 말이
번역을 잘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아들만들기입니다.
징계라는 뜻이 그러합니다.
제가 풀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아들로 만들어지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아들로 훈련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아들로 만들어지는 훈련은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그렇습니다. 참 정확합니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훈련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아시겠습니까?
‘징계’란 말은 ‘아들만들기입니다.

‘아들로 만든다’는 것은 아들로 낳아 둔 것으로
아들이 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녀란 낳은 것이 끝이 아니라 낳은 것이 시작입니다.
거기서부터 드디어 부모의 수준이 나타납니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압니다.
부모의 마음에 들도록 부모가 요구하는 자리까지
자녀의 교육을 시켜내고 인품과 인격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매를 들기도 하고 상을 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있다면
잘못한데 대한 징계가 아니라,
우리가 천원어치 잘못했다고 해서
우리에게 ‘천원’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어떤 수준,
곧 ‘영적 수준’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열심/박영선목사/새순출판사)



옹기장이-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