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을 믿음은 반드시 성화를 포함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 31)는 말씀은 성화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이 아님을 증명합니다.”라는 한 네티즌 성도님의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하면, 성화가 없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영락교회 출신의 한 30대 후반의 형제님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무슨 행위나 성화가 필요하냐고 반문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가르쳐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 21)는 말씀은 위의 성경 말씀과 상충되는 말씀일까요?

그리고 성경은 왜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하는 걸까요?

벧후1: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빌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10: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과연 이러한 성경말씀이 서로 상충되는 것인지는, 우선 인간의 인격의 구성요소를 생각해봄으로써 그러한 상충이 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사람의 인격은 지정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격의 근간을 이루는 하나님에 대한 자세는 그 사람의 지정의 3요소 모두에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성자 하나님으로 지적으로 인정하고 알고 믿을 뿐아니라 정서로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양하게 되며, 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 5: 6 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반드시 사랑이란 행위로 나타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거룩한 삶을 살려고 진력하는 성화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화는 구원에 필수적인 과정이지요.

한편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무슨 행위나 성화가 필요하냐”는 한 청년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이 청년이 말씀하는 구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얻게 되는 칭의 구원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고 애쓰는 성화의 과정 없이 칭의 구원 만으로서 구원이 완성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사업은 칭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나서 이제까지의 육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성화를 통해서 완성되어 갑니다.

롬6: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베드로 후서는 그리스도를 앎으로 믿게 되었으나 세상의 삶으로 되돌아가면, 당초에 믿지 않는 것이 도리어 낫다고 말씀 합니다.

벧후2: 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히브리서10: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한 인간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칭의 구원을 얻는 일은 신부가 신랑과 결혼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결혼이 열매를 맺는 가운데 끝날까지 지속되기 위해서는 신랑과 신부의 애씀이 필요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신자를 사랑하며 인도하며 도우시고 신부인 신자는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진력함으로써 성화를 이루어가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신 칭의로 활짝 핀 구원의 꽃이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구원의 열매를 맺어가도록 진력 하십시다.

나 한 사람이 성화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바라는 한국 교회의 개혁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신자가 성화의 삶을 살지 않을 때 교회의 개혁은 영원히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되었던 성령강림의 부흥이 한반도에 다시 일어나도록 성령강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성령강림으로 타락한 목사, 장로, 신도들이 앞을 다투어 회개하고 영적 순결을 회복할 때에 한국교회의 개혁의 물꼬가 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