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가의 반대개념이라 할수있는 세속음악(Secular Songs)의 유래를 알아보고  이 음악의 내용과 전파의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속음악이 어떻게 역사상 나타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대략 중세 후기 그러니까, AD.11세기 이후 라고 보아집니다. 사실 전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이후 기독교는 로마를 중심으로한 서구 유럽의 전지역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성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죠.

중세 초기만해도 스페인을 중심으로한 ‘모자라베,프랑스지방을 중심으로한 ‘갈리아, 이탈리아 밀라노지방을 중심으로한 ‘암브로시우스, 영국을 중심으로한 ‘세럼, 이라는 그 지방 특유의 예배양식과 음악이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언어적 관습에 맞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세초기 예배양식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교통과 통신 그리고 문화교류의 어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수있지요.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들은 제각각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음악적 특성이나 언어, 그리고 문화요소가 예배형식으로 나타났다는것이지요. 그러다가  6세기 이후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자신이 직접 성가곡을 만들고 예배형식을 정리하여 각 지역의 교회에 보내어 예배형태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성가연주가 예배의 중요한 과정으로 사용되면서 중세인들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도 그러하듯이 중세에도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나 종교관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이며 현실에 반발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대개가 젊은 대학생이거나 종교계의 진보적 인사들, 그리고 문인, 예술가들 이었습니다 .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정치적 이슈에 대해 비판하고,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토론을 즐기고,  이성간의 사랑이나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이를 동경하면서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길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졌고 필연적으로 생활비가 요구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면서  연주활동과  사랑을 즐겼습니다.  다시말하면 근대 한국사회에서 보았던 유랑극단 같은 활동을 한 것이었죠.

이들은 독자적으로, 혹은 작은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그리고,  이 성 저 성을 방랑하면서 노래,연주,요술, 곡예등을 하면서 정치와 사회 불만을 몸으로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집단들은 12세기경 프랑스지방에서는 트루베르(북), 트루바도르(남)들이 독일에서는 14세기 이후 미네징거와 마이스터 징거라는 단체로 발전하여 세속적인 노래를 만들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엄숙하고 정중한 교회음악과 달리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로 되어있어 일반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되었는데, ‘사랑”자연의 아름다움”정치인들의 음모나 암투’ 등을  포함하고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엄숙한 가톨릭 성당안에서 불려지는 미사음악만을 듣고 불러왔던 일반 서민들에게 소박하고 단순한 가사로 된 ‘샹송’이나 ‘칸초네’등은  얼마나  재미있고 감성적인지요. 이들 음악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종교음악과는 다르게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물론, 이들 세속음악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종교음악과 구분되었던 것은 아니고 교회의 찬미가선율에다 가사만 약간 바꾼 형식으로 가정이나 야외에서 혹은 각종 행사장에서 연주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점차 세속음악을 위한 독창적인 노래형태로 변하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이탈리아에서는 ‘칸초나’로 프랑스에서는 ‘샹송’으로 불려진것입니다. 오늘날 불려지는 샹송이나 칸초나는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고 지금도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음악의 출현은 15세기 루터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사회적 변화추세에 맞추어  더욱 세련되어졌고, 16세경에는  기계공업과 재료공학의 발달과 함께 기악음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세속음악은 서서히 종교음악에서 탈피하여 인간 자신의 삶과 인생을 노래하고 자연과 사랑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려는 다른 예술과 함께  변화되어갔습니다.

한편,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음악에도 매우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성가의 대중화가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주는 작은 성이요.” 라는 찬송가는 기존 가톨릭 성가가 갖는 패쇄적이고 고도의 전문적인 성가의 폐혜를 없애고 모든 대중이 함께 부를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영적인 멜로디를 만들었고는데, 이는 당시 교회음악의 새로운 형태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중에 부르는 찬송가는 이러한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통해 작곡되어진것이며 그 음악의 단순성과  아름다운 영적 표현은  가사의 의미와 함께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인 감동과 행복을 전해주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보다 큰 영적 감동을 주는 요인은 신자들 모두가 함께 주님을 찬양한다는점입니다. 그것은 음악이 쉽고 노래말이 가슴에 쉽게 전달될수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기존 가톨릭 음악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어려워 지는것에 대한 우려를 이렇게 대중적이고 쉬운 찬양곡을 통해 해결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속음은 15세기 이후 종교적 교회음악의 분화로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향수이며 본능이라 할수있습니다. 즉,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자연에 대한 경외감,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분노 등이 쉽고 편하게 표출된것이라 할수있습니다.

남성성가대 지휘자 송진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