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다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
-크레이그 & 마이클 공저-

올 6-7월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포성경학교 성경공부에서 강선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3학기째 같은 과목을 들으면서 전체적인 교리를 조금 알만한 즈음에 ”성경은 드라마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진도로 창조-타락-구속의 내용을 듣고 읽어나가면서 같은 내용을 하나는 보수적이고 권위 있는 교리로,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역동적인 드라마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
이 두 권의 책은 전편 후편의 하나의 책이라고 공동저자인 마이크와 크레이그는 말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성경은 창조, 타락, 회복, 구속의 완성에 이르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의 큰이야기(메타 네러티브)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가 있어야 비로소 기독교 세계관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경은 드라마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막-창조, 2막-타락, 3막-구속의 시작, 막간, 4막-구속의 성취, 5막-교회 선교, 6막-구속의 완성(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뤄져있으며 오순절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현재는 5막 “이미 그러나 아직”의 시간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해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약과 신약사이의 하나님의 침묵기간(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리던 3막과 4막 사이의 막간)과 지금 4막과 6막사이(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는 중간기로서 매우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 시대와 다가올 시대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으며 우리는 두 시대가 겹쳐있는 ‘중간기’에 살고 있고, 그리고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약 부분은 방대한 양을 마치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겨 재미있게 읽어나갔고 신약은 너무 줄여놓아 내용을 파악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데 오히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나 신앙의 연륜이 있는 분들에게도 성경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계기는 충분히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얼마나 방대한가하는 신앙의 큰 그릇을 선물 받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침묵하셨던 신구약 사이 400년 동안의 이스라엘(이 책에서는 막간으로 표현)에 대해 늘 궁금하였는데 그에 관한 설명이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래스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으나 일부의 사람들만(30%)이 돌아왔다는 것,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에 흩으셨으나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셨던 것. 그리고 오랜 세월의 수많은 외세의 압박( 앗시리아, 바벨로로니아, 페르시아, 마게도니아 그리고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그토록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하나님의 언약하심을 오로지 기다려왔던 유대인들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자기들을 해방시켜줄 힘 있는 메시야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를, 예수님을 메시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들의 당시의 어리섞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이야기의 목표는 창조 세계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오로지 부활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 관한 내용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성경드라마 제 5막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입니다. – 배경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사조요, 등장인물은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입니다. 성경이야기는 창조 타락을 거쳐 구속을 향하여 가고 있고, 문화이야기는인본주의를 향하여 가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바로 두이야기의 교차로입니다. 문화와 성경진리는 배타적 관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설정이 우리의 선택은 더더욱 아니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인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의 문화환경(후기현대문화사조) 속에 놓여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 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마지막인 제 6막-구속의 완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야기와 문화이야기의 교차로에 서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현시점과 문화의 현재를 확실하게 파악해야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우리의 신앙여정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기독교세계관이란 그리스도께 초점을 두고 있으며, 성경의 진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후기 현대의 문화적 세계관은 인간의 자율적 이성, 상대적 진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즉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개인의 삶과 말과 행위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거 해야 하며,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분별력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회와 문화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으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하나? 문화를 수용하면 복음이 흡수되기 쉽고, 배척하면 복음을 회피할 것이고 양립하면 소통이 어려워지므로 대화를 통하여 두 전통과 두 공동체사이에서 어떻게 복음주의 신앙을 확장해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문화를 성경의 렌즈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최선임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확산된 <포스트 모더니즘>은 어떤 것인가?
AD 4세기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중세가 이어집니다. 교회가 엄청나게 확장되지만 결국은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15세기 문화혁명인 르네상스가 그 시대정신에 옷을 입혔다면,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은 영혼에 새 옷을 입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로 흐르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 이후 계몽주의사조가 이어집니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현대라고 하면 18-19세기를 지배해오던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의 시대를 일컫습니다. 합리주의 세계관, 자연주의,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흑백논리로 종교나 외적인 힘 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주의 사상은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개인이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20세기 들어서자 도전을 받기 시작하여 계몽주의가 상징했던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는 새로운 문화사조가 조심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름하여 모더니즘인데 전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상, 예를 들면 미술세계의 추상파 혹은 전위예술,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시공을 초월하는 독백 등… 그러나 지나친 개인중심사상은 개인의 깊이는 있으나 소통과 공감을 형성하는 데는 실패하게 되어 일부계층이 누리는 문화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성과 과학에 기초한 진보가 인류를 신세계로 이끌어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할 것이라는 메타네러티브를 신봉하였으나 이를 비판하고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표현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사람들은 드디어 1960년대에 들어서서 그에 대한 거부감으로 개성, 자율성, 그리고 대중성, 다양성 포괄성의 실험을 중시하는 문화사조가 대두 됩니다. 말하자면 모더니즘(현대문화사조)에다 과거 계몽주의문화의 대중성을 덧입혔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현대후기문화사조)입니다.
위기의 상대주의진리는 기독교의 진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독서 나눔회 때 목사님께서 추천해주신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책 데이빗 웰스의 ‘용기 있는 기독교’에서 포스트모던 문화의 시대에 기독교 진리를 따르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회 마케팅으로 점점 커져가는 대형교회와 그곳에 모여드는 신자들의 어렵고 귀찮은 교리는 밀어내버리려는 경향에 대하여 교회가 묵인하여 복음주의 신앙의 색이 바래져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맞서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웰스는 교회가 고전적인 영성으로 돌아가, 현대 세계의 문화적 습관에 물든 영성의 메시지를 허락하지 말라고 강권합니다.
이번에 읽은 ‘세계관은 이야기다’에서 저자는 땅 끝까지의 선교를 위한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기독교가 문화를 아우르는 다시 말해서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상태의 비판적 참여자로서 소통과 포용으로 우리의 신앙을 펼쳐나가며 마침내는 구속의 완성에 이르게 하자는 긍정적인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 진리인 기독교 교리와, 상대적 대중적 실용적인 세계관의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공존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담임목사님의 의견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추신
전교인수련회 목사님과의 대화시간에 발표했던 졸고입니다
목사님의 답변 : “웰스는 강경론적 입장이고 크레이그 와 마이클은 다만 온건적 입장 일일 뿐이다. 어느 것도 정답은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묵묵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길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