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진숙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정체성을 알지 못해 매우 혼란했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려고 태어난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인생의 정답은 무엇인가.
실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부심하였다.
막연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타인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그나마 삶의 기본일 것 같아서 그렇게 금을 그어 놓으니 나름대로 목표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열심을 내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보면
나의 성적표는 마뜩찮고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글 쓰는 일에 골몰하였다.
문학은 나의 생활의 돌파구였으며 희열을 안겨주었다.
찬란한 봄을 송두리째 내 놓아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이 따랐다.
글이란 누에고치에서 실이 뽑아져 나오듯이
그렇게 쉽게 써 지는 것이 아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경쟁이 되다보니 나를  옭아매는 또 하나의 단단한 밧줄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 저자와  나의 사고가 서로 닮아 있어서 반가웠다.
한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형제처럼
하나님의 영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용하는 언어도 비슷하고
생각도 많은 부분이 같은데 한 영으로 맺어진 자매여서 그런 것 같다.  
한 가정의 가장에게 불어 닥친 시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그리고 당사자는 어떻게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지 기대가 되었다.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과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맞는 저자는 갑자기 세 아이의 편부가 되어
힘겹게 살아야 하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실이란 자고 새면 산적한 일들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누적되는 일들이 산처럼 쌓이고 마는 것이다.
우선 엄마 없는 어린 세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이런 비극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왜 하필이면 나 인가”. 라고  
절망하며 한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손 놓고 주저앉아 있을수록 힘든 상황은 가중된다.
혼돈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마귀의 속성을 떨쳐 버리고 일어나서
다시 주어진 일을 열심히 치뤄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이 깊은 은혜가 된다.

속히 깨달을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성령님도 애통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지켜보며 힘을 주셨을 것이다.
  홀로 그 어려운 길을 간다면
쉽게 낙담하고 주저앉게 될것이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안에서 담대함과 자유함을 주시지 않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를 견디며 성실하게 사는 것이리라.

어느 경우에도 우연은 없는 일이고 보면
하나님이 누구보다 크게 사용할 분명한 뜻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거저 빼앗는 것은 없으시다.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시각을 제시 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세 아이들을 기도로써 훈육하며 책임감 있는 자녀로
키워낸 생생한 경험을 책으로 엮을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일이 있을까.

만약 온실 안에서
바람 한점 없는 평온한 일상을 살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전하는 일에 사용되지 못했을것이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날이 없고
하나님의 한 치 오차도 없는 계획속에
우리 인생이 빚어져 가고 있는 것을 세월이 지나야 알게 되듯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초로의 나이에 들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한 뜻을 이루시려고 그동안 글 쓰는  연습을 시키신 것이었다.
첫 수필집을 출간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이야기도 써서 같이 책을 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나에게 찾아와
살아계신 체험을 주셨고
나는 하나님을 만난 뜨거운 감격과 은혜를
생생하게 글로 써서 수필집 뒤편에 함께 수록하였다.

  많은 독자들이 뜨겁게 은혜를 받았다고 엽서와
전화로 그 떨림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데
그동안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열등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소망이 생겨나던 것이다.
그동안 글 쓰는 작업을 해 왔던 것은
신앙적인 글을 쓰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 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문학적인 글을 쓰지 못한다.
문학이란 쓸쓸하다거나 우울한 날의 기록일진데
이제 성령의 충만으로 나는 충만한 중이고
하나님의 영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고독하다거나 외롭다는 감정은
나에게서 자취 없이 사라졌다.

뒤 돌아 보면
하나님의 온전하신 계획 속에 한 치 오차도 없이
나를 인도하여 주신 것이 깨달아 진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지금 이 시간까지 올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의 노력과 살뜰하게 살아온 대가로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소견이었는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지만
그 감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됐음을 알지 못했으며 대상없는 감사를 했었다.

하나님은 내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정체성에 대해서도 손에 쥐듯 알려 주셨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묻는 것에 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태초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전지전능하신 분이
나의아버지라는 자존감이 생겨났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뜻하신 대로 살다가
구원을 받아 영원한 나라에 초대 될 것을 믿는다.
나에게 찾아와 나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적에 감사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구속과 인도하시는 손길에 감사한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도 자녀로서
즐겁게 하나님과 동행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