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시평>
존경받는 음악가의 조건

송진범Ph.D.(한국음악교육협회부회장)

1812년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물결이 독일 전역을 휩쓸고 괴테와 헤르더 같은 문인들, 루소, 칸트, 헤겔,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이 ‘계몽주의(Aufklärung)’의 사상적 기반을 논할 때, 프랑스의 포병장교였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한다. 같은 해에 베토벤은 교향곡 7번과 8번을 비인에서 연이어 발표하면서 나폴레옹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7번 교향곡의 당당하고 우렁찬 시그널은 분명 봉건체제에 대한 승리와 공화정치에 대한 베토벤의 염원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봉건적 권위와 귀족에 대한 혐오감은 당시 사교계의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한다. 하루는 베토벤이 평소 존경하는 괴테와 함께 비인의 ‘프라터’ 공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바이마르 대공과 그 일행이 두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괴테는 한때 자신의 고용인이기도 했던 대공에게 깊이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오히려 뒷짐을 짓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때문에 괴테로부터 그의 예의 없음에 대해 핀잔을 듣게 되었다. 괴테는 이러한 베토벤의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가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베토벤은 오히려 그러한 괴테의 저자세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나무랐다.

서양음악사에 등장하는 19세기의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이 비단 이들 뿐이겠느냐마는 유명한 음악가는 많아도 인류에게 존경을 받는 음악가는 많지 않다. 그것은 작곡이라는 예술행위가 ‘모방(Mimesis)’의 행위이며, 이는 굳건한 창작자 자신의 예술세계 자체가 완전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이 말을 곱씹어보자. 음악은 ‘모방’을 근거로 한다. 그 ‘모방’이란 자연일수도 정치적 신념일 수도, 사랑의 본질에 대한 것 일수도, 흐릿하고 막연한 민초들의 바람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을 대상으로 한다. ‘모방’이 창작의 근거이자 모테가 되었다고 말하는 미학적 판단은 19세기 낭만주의 이후로 규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음악이 자연을 모태로 만들어 졌음은 이미 고대 피타고라스의 이론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작곡가가 자신의 창작세계 혹은 창작의지만을 근거로 하여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느냐, 아니면 어떤 음악소비자(聽衆)의 취향이나 삶의 어쩔 수 없는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냐, 라는 점이다.

  20세기 이후 우리는 흔히 전자의 음악을 ‘예술음악 혹은 순수음악’이라고 하고 후자의 음악을 ‘대중음악 혹은 상업음악’이라고 구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음악가들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음악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더 멋있게 살아가고 싶은 생물학적 욕구를 만나게 된다. 즉, 멋있게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자신의 창작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필요로 하는데 그런 요구는 창작자의 의지나 예술혼과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순수한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연주가를 제외한 작곡가만을 예로 들어 본다면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름난 작곡가로 활동하는 작곡과 교수의 삶과 창작활동을 눈여겨보자. 그들은 대부분 대학이라는 상아탑의 보호아래 교수로서의 권위와 작곡환경, 그리고 열렬한 소비자(학생이나 제자모임)그룹과 교수프리미엄을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창작의 세계만을 놓고 볼 때 대단히 불평등하고 위험한 게임이다. 한 작품이 탄생하고 그것이 청중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한국인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 작곡가의 출현은 이렇게 완벽하게 안락한 작곡환경이나 권위적인 상아탑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아무도 지지하는 이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영혼이 자신의 예술세계에만 함몰되어있는,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무슨 일은 하는지 잘 모르며 가난하고 갇힌 자의 울부짖음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작곡가에게서 더 기대할 수 있다.  예술세계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적 주관에 대해서는 미학적 논쟁의 다양한 주제가 될 수 있음도 안다. 대학교수여야 되고, 큰 단체의 전속작곡가여야 훌륭한 작곡가로 인정하는 일반적인 사고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경제적 풍요와 권위적 부요함은 창작자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예술혼을 갉아먹는 마약과 같다.

18~9세기의 음악환경과 다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좋은 예가 있다. 1761년부터 1791년까지 에스테르하지 공의 궁정악사로 활동했던 프란츠 요셉 하이든의 교향곡을 생각해 보자. 그는 30년 동안 매주 귀족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어야 했고, 이를 위해 연주자들을 연습시키고, 작곡을 하고, 리허설을 해야 하는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110개에 달하는 그의 교향곡은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로 만들었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방황과 고통 속에서 그 작품을 써왔는가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그에 비해 9개뿐인 베토벤의 교향곡은 한결같이 지금도 연주되고 있다. 베토벤과 하이든의 삶을 단순하게 비교해 본다면 커다란 차이점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데 그것은 예술을 위해 작곡했느냐 혹은 먹고 살기위해 작곡을 했느냐이다. 먹고 사는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인류역사상 거의 없었겠지만 비교적 베토벤의 생애는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안정을 찾았고 경제적 어려움에서 자유로웠다. 많은 후원자가 조건 없이 그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속받지 않는 작곡가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미래의 인류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음에 대해 강렬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귀족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부족을 비웃으며 그들의 영혼의 궁핍함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창작은 권력이나 돈이나 영혼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권위와 명예와 돈으로 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한국의 작곡가들이 이러한 상아탑속의 권위와 과보호, 안일한 부의 축적이나 향유, 독선과 의식 없음으로부터 독립된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우리시대에서 존경받는 작곡가를 만나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음악가를 지원하겠다는 문화예술정책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이러한 창작예술의 미묘한 심리적 환경까지도 고려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음악의 특성을 이해하고는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작곡가들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모든 음악가들에 대한 문제이다. 궁극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의 자유, 권위와 독선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진정한 예술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이러한 현실적인 고통과 창작에 대한 영혼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작곡가, 그런 작곡가가 존경받고 사랑받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작곡가가 대학의 권위와 지원의 보호막 안에서 달콤한 시간에 안주하고 있을 때 그들의 예술적 영혼은 점차 세속화되고 결국은 악마에게 팔리게 된다는 위기의 논리 앞에 비장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1787년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죠반니’를 초연했을 때 당시 비인의 평론가들은 그의 천재성을 악마에게 팔아먹었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권위나 재정적인 보호는 물론 건강과 가정의 행복이 주는 보호막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순결을 요구하거나 존경을 이야기할 명분은 없다. 새 정부의 예술정책도 음악가들이 이러한 삶의 문제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미 보호받고 있는 음악가와 아직도 그들의 음악적 영혼을 악마로부터 보호해야 할 수많은 그렇지 못한 음악가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악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영혼이야말로 존경받는 작곡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