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이 끊어질까 한번 더 힘을 주어 용틀임한 산, 소백!

그 눈덮힌 차가운 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한 걸음 한걸음  아픈  다리를 들었다 다시 놓기 5시간,
능선의 세찬 칼 바람이 온몸을 날려보낼듯 기세가 대단했던, 1460m의 소백산을 다녀왔습니다.

20대에  멋 모르고 친구들과 겨울 치악을 다녀온 후로는 겨울 등반에 대한 준비와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고, 감히 겨울에 산에 간다는 말은 입에 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서병국 집사님이 같이 가자는 말에 용기를 내어 장비를 이것저것 사모으고 깊히 넣어두었던 배낭이며 우의등을 꺼내어 이틀동안 이나 부산을 떨었습니다.

토요일(22일) 아침7시반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각, 소형버스에 몸을 실은 일행은 중부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치며 단양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충북에서 태어났지만 지금까지 단양을 가본적이 없는터라 그 말로만 듣던 단양팔경의 모습이 담긴 호수와 산들을 보며,  전 오늘 산행에 대한 집념을 다잡았습니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 살을 애는 산 바람에 출발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배낭과 스틱을 메고 서집사님의 출발명령에 따라 오르기 시작 했습니다. 다행히 길이 넓고 경사도 완만해서 그런대로 출발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체력이 딸려선지, 한참 가다보면 일행은 저만치 가서 쉬고 있었고 전 뒤처지지 않으려 다들 쉴때 계속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발걸음이지만 이렇게 내딛다 보면 정상까지 가겠지.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머리칼은 땀과 입김이 얼어붙어 하얗게 되었고, 속옷은 모두 젖어 느낌은 아주 찝찝했습니다.

어쨌든 점심을 먹을 시간, 그 좁고 추운 임시 산막에서, 오댕국물을 그나마 의지하여 가져온 음식을 대충 입에 넣었습니다. 컵라면을 가져왔지만 보온병이 거의 식어버려 컵에 부어도 익질 않아 대충 먹어야 했습니다. 인절미, 족발 한입, 오댕2개, 컵라면, 그래도 칼로리는 충분히 섭취한듯 하군요.

다시 출발!
강성남 집사님은 자동차를 반대편으로 몰고 오기위해 다시 하산하고 나머지 일행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양쪽 발이 굳어버린듯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옆에서 걱정하며 따라오시던 서병국 집사님이 근육통인것 같다고 약을 먹는게 좋다고 합니다. 전 한쪽손으로 스틱을, 다른 손으로 아픈다리를 주물러 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현영구 집사님과 함영규집사님은 이미 저만치 올라갔구요.

“아, 강성남 집사님과 손 흔들며 헤어질때 따라갔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몰려오더군요. 그래도 이젠 할 수 없었습니다. 나 때문에 일행 모두가 도로 내려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다시1시간 정도를 걸으면서  서서히 다리는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능선을 따라 600미터 이젠 정말 정상이 바로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눈을 뜰수가 없었습니다. 준비했던 고글을 써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손이 얼어서 고무줄을 당길수가 없었습니다.  서집사님이 또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글안에 성애가 끼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눈이 덜 시리니까 그냥 쓰고 걸었습니다.  정상입니다. 아니 왠 하얀 산 개(Dog)가 신나게 사람들 틈을 돌아다닙니다.  누가 데려왔나 했는데, 나중에 하산해서 절 부근에 그 개가 돌아다니는걸 보고 또한번 놀랐습니다. 아니 이 개는 하루에도 그 가파른 길을 등산객을 따라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산 너머에는 바람도 없고 눈도 없고,  맑고 파란 하늘만 있었습니다. 언제 그 눈보라를 맞으며 걸었는지 그저 평화만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기쁨과 슬픔, 성취와 빼앗김의 양면속에서 사는게 아닐까……  그런데, 이젠 그 산 사나이라고 하는 현영구 집사님이 다리를 절고 계셨습니다. 아마 무리가 됐나 봅니다. 체통을 구긴 것이지요. 이후로 서집사님과 함집사님의 집요한 놀림감이 된건 제가 보기에 너무 안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미, 주차장엔 강집사님이 차를 대기해놓으셨더군요. 그 미니버스의 안락감이란 이전에 몰랐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달려 풍기온천탕으로 갔습니다. 그 유황냄새나는 미끈거림, 그 뜨거운 온탕에 언 몸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란, 정말………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이튿날 주일예배 (1부) 마치고 저희 집사람과 딸을 데리고 다시 그 먼 풍기 온천을 찾아 갔었습니다.

사실은 그 눈 덮힌 소백산을 가리키며 “내가 어제 저 산을 넘었다는거야.”하며 자랑하기 위함도 있었겠지요.   아뭏든 뜨거운 온천욕후 가뿐해진 몸으로  인근의 인삼냉면집으로 향했습니다. 특히, 현집사님이 맛있다고 우겨서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삼한우불고기에 냉면이라……….

찬 바람이 이미 어두워진 겨울산에서 마을로 내려불기 시작합니다.  이젠 서집사님의 운전에 모두 맡기고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댄채 서울로 향했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눈도 오지 않아 고속도로는 정말 깔끔한 느낌이었습니다. 현집사님의 다리가 주요 화제였는데, 그 놀라운 산(山)사람이 하루아침에  초보급으로 강등됐으니 아마 현집사님의 충격도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말 좋은 겨울산 경험이었습니다.  

2011.1.24.

송진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