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23회)

18세기에 오페라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사실 전 오페라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요, 그 이유는 오페라가 가지고 있는 오락적 내용이나 등장인물들의 판박이 같은 노래스타일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성악이라는 장르가 너무 직설적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감각적이라고 할까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직접성 때문에 내용이 단순해지거나 적나라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페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종합예술로서 모든 영역의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유기적으로 하나의 목표로 승화하는 것을 보면, 오페라야 말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감성을 가진 음악형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창밖을 보다가 오페라와 뮤지컬을 번갈아 생각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뮤지컬은 무엇인가? 왜 그렇게 뮤지컬을 좋아하는 걸까?  한국에서 뮤지컬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거의 공연되지 않는 분야였고, 오히려 오페라가 더 인기 있는 공연물로 일제시대 에도 공연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뮤지컬이 많은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예술 장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남경주와 박칼린이 주연하는 뮤지컬을 보러 간적이 있습니다. 제일 저렴한 가격이 7만 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천석 정도 되는 극장이 완전 매진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입장료에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전 뮤지컬에 대한 묘한 질투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고전적인 창법을 고수하는 오페라가 과연 음악의 존재가치에 절대적인 조건일까? 이렇게 청중의 취향이 급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오페라 가수들은 전통적 창법, 이를테면 ‘벨칸토’ 같은 것을 오페라에서 꼭 고집해야하는가? 19세기의 ‘라 트라비아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무대에 올린다면 어떨까?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18세기 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던 오페라를 통해 현대 오페라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연과 인간을 중시하는 사회

전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18세기는 헤르더나 괴테, 쉴러 같은 계몽주의 문학가, 칸트나 헤겔, 그리고 쉘링이나 쇼펜하우어 같은 관념주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매우 인간과 자연 중심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들은 음악이 인간의 이성과 존재적 가치를 표현하고 특히 이성간의 사랑이나 목가적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오페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원활하게 발전하였는데 문학의 비극적 결과나 지고지순한 연인의 사랑을 그려내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는 당시 젊은 귀족이나 왕족의 구미를 만족시키는 중요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한 젊은 왕자가 말을 타고 자신의 영지를 따라 사냥에 나섭니다. 그는 사냥감에 몰입해서 해가 서산에 지는 줄도 모르고 숲속을 헤매게 됩니다. 급기야 깜깜해진 주변을 돌아보며 깜짝 놀라 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지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나뭇가지에 찔리고 야수가 나올까 두려워하면서 인적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가 멀리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불빛을 따라 왕자는 달려갑니다. 왕자는 그 오두막에 도착해서 젊은 여인에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도록 청을 합니다. 그 여주인은 잠자리를 허락하고 음식과 술도 제공합니다. 왕자는 그녀의 청순한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 왕자는 성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를 성으로 초대하고 함께 미래를 약속하기도 합니다. 여인은 그 후 왕자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며 많은 날을 보내지만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날마다 한숨의 나날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목가적 사랑이야기는 당시 계몽주의 사조와 함께 많은 인기를 누렸던 소재입니다. 18세기 초에 등장한 ‘오페라 세리아’는 비극적인 결말을 지으면서 청중에게 아쉬움과 감동을 남겨주고 끝이 나게 마련인데요, 여기에는 ‘다카포 아리아’형식이라는 주인공의 음악적 자율성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원래 ‘다 카포 아리아’란 주어진 악곡의 형식 안에서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규칙을 말하는데 악극의 역할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만큼 기교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청중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 이러한 주인공의 역할을 많이 했던 사람들 중에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가수들이 있었습니다. 이 ‘카스트라토’는 전에 소개했듯이 남성으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생리적인 거세를 당했던 사람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높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주어진 음형 안에서 노래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특수한 가수들에 의해 오페라는 많은 인기를 끌게 되어 결국 중산층까지도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이 당시 오페라는 대중적인 공연을 통해 많은 수입을 보장해주는 문화 사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2.글룩의 오페라

‘글룩’이라는 사람은 18세기 초에 보헤미아에서 태어나 비인 궁정음악가를 지내다가 40대를 전후해서는 파리에서 주로활동을 합니다. 이 사람은 17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몬테베르디’와 ‘륄리’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특히 고전문학을 자주 이용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 와 에우리디체”라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의 특징은 중세의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한 완전한 이성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당시 자연과 인간존중이라는 흐름에 적절한 테마이기도 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환상 같은 대중들의 취향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당시 프랑스 오페라는 발레나 고전신화,  그리고 여러 악기들을 이용한 예술성이 강조된 반면 이탈리아 오페라는 이와는 반대로 일회적이고 코믹한 주제를 상업성에 기초하여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나폴리  같은 곳에서는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작곡과 리허설을 완성하고 무대에 올릴 만큼 상업적인 마인드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의 오페라 스타일과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이 예술성 유무, 내용의 세속성 유무, 무대 장치의 화려함 여부 등으로 양국 간에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충돌을 ‘부퐁논쟁(Buffons)’ 이라고 하는데 이는 예술에 대한 주도성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이러한 프랑스 오페라의 예술성을 주도해 나가는 데에는 글룩과 같은 순수하고 점잖으며 고상한 색깔을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글룩은 그의 오페라에서 음악의 역할을 가사의 내용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순수한 역할을 중시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관현악의 여러 악기들을 음향효과를 위해 조심스레 사용했습니다. 즉 음악이 극을 주도하기보다는 대사나 스토리의 전개를 중시했던 것이지요.

3. 코믹오페라의 유행

18세기 코믹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대중적이고 흥미위주의 상업적인 오페라로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예술성 위주의 ‘오페라세리아’에 대한 반발로서 가볍고 우스꽝스런 배우들의 출현으로 오락성이 강조된 오페라입니다. 이 형식은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이웃나라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지로 확대되어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코믹오페라의 풍자적 요소를 이용하여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전달하거나 봉건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담긴 내용을 공연함으로써 권력자들이나 성직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헨델에 의한 “거지오페라”가 영어로 공연되어 일반 대중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받았습니다. 당시 영국사람 들은 이태리의 화려하고 수준 높은 오페라를 이태리어로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 내심 속상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헨델이 영어로 된 코믹하고 영국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내놓게 되니까 하루아침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이지요.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이태리 오페라 배격운동까지 일어나게 됐다고 하는군요.

독일에서는 ‘징슈필(Sing Spiel)’이라는 코믹오페라가 유행을 합니다. 이 징슈필은 독일어로 ‘노래’와 ‘놀이’를 의미하는데 노래하며 즐기는 놀이라는 의미가 숨어있겠군요. 독일에서는 처음에 영국의 발라드풍이나 프랑스의 코믹풍의 오페라를 번역하여 공연하였지만 후에는 독일의 민속선율을 독일 특유의 낭만적인 스토리와 결합하여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독일 남부지역인 비인은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가까운 덕에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가 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덕에 모차르트와 같은 오페라 작곡가가 등장하였고, 18세기 후반에 가서는 오스트리아가 국가 경제력을 등에 업고 오페라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탈리아 코믹오페라가 얼마나 오페라가 유행을 했는지 모차르트도 유명한 ‘돈 죠반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같은 작품이 등장하여 흥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물론 ‘돈 죠반니’ 같은 오페라는 너무나 흥행위주로 작품을 쓰다 보니 윤리성이나 예술성면에서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