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시평>

 

고급문화는 소화 할 수 있는 사회가 먼저다!

 

 

송진범 Ph.D.(음악 평론가)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Theodor W. Adorno는 J.Habermas, M.Horkheimer, H.Marcuse 등과 함께 현대사회의 물상화(物象化)를 가장 우려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성회복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하버마스는 철학적 사유를 통한 인간이성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현상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그에 대한 공동주관화를 주장하였다. ‘인식의 공동주관화’란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개념적 사유에 대해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주관적 사유를 비판적으로 토론하고 이를 공동의 가치로 동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공동의 가치가 주관하는 사회는 물론 민주적 질서와 개인의 존재 가치가 용인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호르크하이머는 개인의 윤리적 보편성의 소유가 현대사회의 물상화를 극복하고 민족 간의 차별이나 국가 간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기본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사회가 공동의 질서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위한 최소한의 규범인 윤리의 실천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문질문명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주장한다. 마르쿠제는 좀 더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칼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헤겔의 이론을 이어받았다. 그의 이론은 급진적 좌파운동을 지지하면서 잘못된 사회체제에 대한 혁명과 전복운동이 일어나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공산주의 혁명을 일면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닉하게도 미국으로 망명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이들 중 유태계 독일출신의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이며 동시에 사회·철학자였던 아도르노는 그의 음악적 담론을 당시 독일제국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지적하고 새로운 학생운동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근대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말한 현대사회가 가진 비인간성과 야만성은 당시 히틀러정권의 정치이념에 대한 비판과 그 허구성을 폭로하기위한 목적이 있었지만 그 사회비판이론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 ⌜부정의 변증법⌟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 지향적 인식과 자본의 적극적인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특히 인간정신의 절대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기존세계의 긍정적 비판요소로 삼았던 헤겔의 이론을 부정함으로서 18세기 독일 관념주의 사상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성과 자본이 지배하는 유물론적 사고조차도 역시 비판과 반성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아도르노는 그 예로 2차 세계대전의 잔학상을 들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과 자본을 통한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결국 히틀러와 같은 대중적 폭력이 세계를 야만적이고 독선이 지배하는 비인간적 사회로 전락하도록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바람직한 인간성회복이 예술적 미메시스(Mimesis;모방)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고급한 가치와 형식, 음악의 본유적 개념을 인간성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80년 전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그리 낯설지 않다.

이번 3월 18일 중국의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예정되어 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공연이 중국의 비자 발급 거부로 취소됐다고 한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2월 19일부터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로 이어지는 중국 투어 공연을 위해 비자를 신청했지만 역시 뚜렷한 이유 없이 비자발급이 거부되었다. 중국 정부의 이렇다 할 해명이 없는 비자발급 거부는 어떠한 국가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술가 특히 음악가의 경우 그들은 단지 음악이 가진 순수한 가치와 평화적 이상을 전파하는 메신저로서 국가나 민족, 이념과 가치를 떠나 인류애를 전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가들에 대한 정치적 폭력은 세계의 지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비자발급 거부는 결국 전 세계의 문명국가들로부터 중국이라는 민족적 사회주의 국가가 가진 제도적 한계와 대국답지 않은 편협성만을 노출시켰을 뿐이다. 이에 대한 유일하고 확실한 이유는 우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이라는 점이다. 음악가들에 대한 입국비자발급을 거부하는 이면에는 중국정부의 보복적 앙갑음때문 이라는 것을 그들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은근히‘그렇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중국정부는 음악가들에 대한 비자발급거부가 사드배치 결정 때문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 정부의 사드결정에 대한 반정부 기류가 흐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회는 이미 그렇게 음악예술이 권력의 간섭에 의해 좌우되거나 거부될 만큼 유치하지 않다. 중국 정부가 한국에서 그런 음악사회적 반감을 기대했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힘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한 나라의 힘은 국가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의 의지에서 나온다. 그 국민의 상식과 수준이 얼마나 고급한 것인가는 이러한 예술 활동과 같은 순수한 창작과 이의 수용이 어떠냐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미 대한민국의 음악가를 떠나 세계의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러한 그들을 국적이 대한민국이라고, 그래서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드를 배치한 나라사람이라고 거부한다면 그들은 고급문화를 향유할 자격이 없을뿐더러 그들이 내세우는 패권주의와 보호무역에 대한 반대논리에 대해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꿈꾸는 아시아의 맹주,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고급문화는 그 예술적 가치와 순수성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간섭과 경제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건우씨가 중국에서 연주하는 일이 한 나라의 정책결정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조수미씨가 광저우에서 노래하는 일이 중국군사력에 무슨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적어도 세계의 중심이 되고 그들로 하여금 존경받을만한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중국은 소심하고 유치한 음악가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공자의 선정을 실천하고 예와 악을 숭상하는 국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이미지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유의해야할 것이다. 그것만이 주변국들로 하여금 존경하고 믿을 만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예술가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중국 외교부 당국에 대하여 우리정부와 관련기관에서는 어떠한 논리로든지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지‘유감’정도의 의사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자국의 정책이나 여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추구하는 물질주의가 음악예술에 적용되어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한다면 더 이상 이런 표현을 애써 주장할 필요가 없다. 예술세계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국가에 대해 문명세계의 그 어떤 국가도 그들을 존중하거나 그들의 주장을 공감하지 않을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정신과 신념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를 존중할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