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무덤사이에서

부활절 예배를 나콘파톰이라고 하는 지역의 태국 교회성도들과 함께 했다.
이 지역교회의 전통을 따라 기독교인 공동묘지에서 드린다.

부활절예배를 공동묘지에서 드리는 모습이 우리 한국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그 모습보다 더 대조적인 두 그림을 본다.
그것은 두 무덤과 관련된 것이다.

한 무덤은 불교의 무덤이고, 또 다른 무덤은 공동묘지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무덤이다.

나톰파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리탑인 프라파톰 제디가 있다. 먼저 간 분의 유골을 보관한다는 점에서 묘지라고 할 수 있다.
높이가 114미터이고, 둘레가 300미터나 되는 엄청난 규모이다.

그곳에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사리가 보관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태국인들은 물론 타국에서 온 불교신자들이 그 사리탑에서 석가모니를 기억하며 예불을 드리곤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독교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오늘은 그곳에서 부활절을 기념하며 공동예배를 드린 것이다.

두 무덤 사이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성인으로 살다가 간 석가모니의 사리탑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생각할까?
그 사리탑에서 공불을 하는 것 자체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것은 아닌가.
윤회설의 믿음으로 아직 확실할 수 죽음 이후의 다음 시대를 위하여 그 자리에 있다.

반면 무명하지만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간 분들의 무덤에서의 예배는 미래에 대한 소망의 확실함 때문에 서 있다.

기독교인들의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도 보아도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다가 간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확실한 소망이 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다. 이미 그 영혼은 주님 나라에 있다. 육체는 마지막 날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그 후손들이 무덤에서 예배를 드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식 때문에 죽음의 두려운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고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신앙을 가진 자만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기억할지라도……
초라한 무덤을 남기고 떠났을 지라도……

왜냐하면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만이 죽음의 두려움과 능력을 이기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