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열왕기(21) (왕하 10:30∼36)

2022. 5. 1. (일)
박 영 선 목사

1. 내용

가. 서론

(1)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후는 열왕기에 등장하는 임금 중에 가장 난폭한 왕이었던 것 같다. 예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의 아들인 요람왕의 군대장관 이었는데, 권력을 꿈꾸어 왔었던 것 같다.

엘리사가 제자를 보내어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너를 왕으로 삼는다는 말을 듣자, 구테타를 일으킨다.

그는 난폭하게 요람을 죽이고 그 당시 동맹을 맺어 올라와 있던 유다왕 아하시야도 죽이고 아합의 부인이었던 이세벨도 죽이고 요람의 형제들 70명을 한 장소에서 죽이고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도 한자리에서 죽이고 바알을 위한 집회를 한다고 거짓 선전하여 모든 바알을 믿는 사람들을 모은 뒤 그 집을 포위하여 다 죽였다.

(2) 열왕기에서 예후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고 기록은 하지만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따르지 않고 여로보암의 길로 갔고 그는 죽었다, 라고 덧붙인다.

나. 본론

(1) 우리는 열왕기에서 많은 실패들을 보는데, 그 실패들은 의미심장하다. 구약에서 이렇게 이스라엘의 실패가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은 사사기 그리고 열왕기이다.

사사기에서는 자유를 얻은 백성들이 개인주의로 방종에 빠져서 혼이 난 이야기가 반복되고 열왕기에서는 권력이 폭력이 되고 만 왕들의 실패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합왕과 아합의 후손들을 예후의 손을 통해 죽이시려고 했는가? 그렇다. 그래서 예후를 시켜 그들을 죽이게 하셨다. 그러나 예후는 올바른 사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을 죽이는 것이 정의인가, 라고 묻는다면 성경의 답은 악을 제거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 않는다.

악은 제거되어야 하지만 악을 제거하면 정의가 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란 긍정적인 통치, 긍정적인 질서, 긍정적인 실력이 있어야 성립한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런 일이 왜 있지? 하는 부정적인 폭력과 거짓과 절망과 비극이 가득하다.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신자들에게 있다면 그것은 겨우 본전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야 한다. 나는 나쁜 짓 안 했어. 이게 정직은 아니다.

거짓의 반대가 정직이지만, 정직은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가지 않고 의와 진리로 가야만 정직이 되는 것이다. 폭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올무가 되어 있다.

나는 무엇이 보기 싫어서 안 해. 신자가 신앙생활을 실천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딜레마이다.

제가 자라났던 교회에 가깝게 지냈던 장로님이 계셨다. 멋지고 상식이 있고 실력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종 종 푸념을 하셨다.

나는 당회 안 들어가.

말하자면 자기의 결백 주장이면서 한편으로는 속이 상한다는 얘기였던 것이다.

장로가 되었으면 당회에 들어가서 마음에 안 맞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함께 가는 짐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래서 나는 당회에 안 들어가, 라고 얘기한다.

(2)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엇을 안 해, 라고 하는 것은 불을 끄고 있는 것이나 같다. 하나의 작은 나의 빛이 소용없으니 불을 끄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심성은 빛보다 불을 원한다. 확 다 지르고 싶은 것이다. 비추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의 표정도 그렇다. 저는 몹시 궁금하다. 37년 동안 한결같이 나와서 그 표정으로 듣고 그 표정으로 간다. 빛이 안나는 그 표정에 대해 오늘은 깊게 생각을 해보자.
여러분은 스스로의 실력보다 넘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니까 웃지 않고 반갑지 않다. 귀찮다. 그러면 신앙을 무엇으로 지키는가? 죽어서 나는 천국 간다.

산다는 것은 내가 매우 중요한 직책을 하나님 앞에서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나에게서만 빛이, 진리가, 화해가, 소망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해야 한다.

세상은 미운 말 하고, 공격하고, 폭력을 쓰는데, 잘한다고 해봐야 그러지 않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는 폭력과 죄를 안 쓰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 (갈5:16~23)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정답을 말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못 써. 그러면 되겠어?

그러면 이런 말에는 아무도 감동을 받지 않는다. 이럴 때는 그냥 웃어야 한다. 상대가 미친 짓을 할 때 담담히 웃어야 한다.

너는 왜 웃어? 재미있어서. 말을 이상하게 하네. 아니, 난 너의 친구잖아. 우리가 묶여있는 사람의 편을 들고, 화해를 시키기 위해 긴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너 그래서 되겠어? 이 말은 우리 자식들도 안 들었고 우리들도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들었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답을 답으로 가질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데 전 생애가 필요하다.

단칼에 해결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전 생애에 걸쳐 폭력과 더러움이 쌓여 있는 곳에 의와 진리의 새사람으로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만이 평화를, 정의를, 행복을, 명예를 증명할 수 있다.

(3)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으로 악을 감동시키라, 가 아니다. 선으로 회개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가 악한 일을 할 때 나는 선한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가 악을 쓰고 있을 때, 주여 저 죄인을 용서하시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센스가 없는 것이다.

기다려 주어야 한다. 너 속이 상하겠다.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33년 동안 우리와 방불한 인생을 사셨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는 비유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이다.

주인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한 사람에게는 다섯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돌아와서 회계를 했는데, 첫째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둘째는 두 달란트를 남겨서 칭찬을 받았다. 셋째는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았다.

너는 왜 하나냐? 저는 주인이 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잃어버릴까 봐 땅에 파묻었습니다. 여기 원금을 드립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이걸 왜 은행에라도 맡기지 않았느냐? 그럼 이자라도 벌었을 텐데.
원금을 준 이유는 그것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첫째는 다섯 달란트만큼의 꽃과 열매를, 둘째는 두 달란트만큼의 꽃과 열매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종 자신이 컸고 실력이 늘었고 수준이 높아졌다. 셋째는 잃어버리지 않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선택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포 속에서 답이 없이 산다.

우리는 답이 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있고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시고 실력이 있다. 한 번에 상대방을 뒤집어 놓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을 위해 내가 보냄을 받은 것이다. 나 하나 편하면 된다는 생각은 십자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빛을 밝혀야 한다.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 많은 실력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많은 경험을 통해 실력이 커나갈 것이다.

다. 결 어

(1) 여러분은 저와 37년을 같이 했다. 그러나 표정 좋은 사람은 몇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내 인생도 어려운데 어떻게 그러냐?

여러분이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자식들 앞에서 얘기할 때 여러분의 현실을 실토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러면 애들이 오히려 걱정을 한다. 엄마 괜찮아?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집이 내일 넘어간다. 어떻게 할까? 교회로 가자. 철야를 하자. 엄마 무슨 일이야? 응, 아무 일도 없어.

다음 날 업고 뛸 일이 생겨도 부모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2) 욥의 친구들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와서 정답을 얘기하고 욥을 들쑤셨다. 욥이 항의했다.
너희들은 내 친구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각박할 수 있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거기에는 분명히 생명과 진리와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임마누엘이 된 것처럼 우리가 있는 곳이 임마누엘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어떤 존재로 있을 것인가?

성경은 이 문제를 열왕기에서 꾸짖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것을 알았으니 교회 시대는 이것보다는 나아져야 한다.

저부터 웃을 테니까, 표정 한 번 밝게 해보자, 우리의 인생에 감사가 있어야 하고 모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조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은혜와 기적을 담아낸다,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표정이 좋아지고 담대해진다. 우리는 인내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몸담은 세상은 험악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께서 오셨고, 그리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적의 증인입니다. 기적을 행할 능력자들입니다.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소망이며, 명예이며, 자랑이며, 행복입니다. 이것을 나누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