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마을사람들 소식 (2011-11-15)

지난 8월 15일,  남가주 방문을 마친 후 저는 곧바로 중국으로 향하는 항공편에 몸을 실었습니다. 본국사역이 시작된 후로 세번째의 현지 방문길이었습니다. 여행 비수기인 지난 4월과는 달리 베이징역 대합실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고, 미리 부탁했던 기차표도 원하는 날짜의 것을 구할 수 없어서 하루 뒤의 것으로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매물로 내놓은 표를 겨우 구입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 부부가 영접을 해주어서 하루 동안 편안히 쉬고 다음날 저녁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저녁에 출발하여  침대칸에서 한잠자고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면 곧 오후가 되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항공편 대신 기차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능하면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제가 큰 불법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인 일만 하는 동안에는 정부의 눈을 피해서 조용히 지내는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얼마동안 지내다 보면 (예를 들어 전화를 몇 번 사용하게되면) 감시망에 걸려들게 되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 들어와 살면서  저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모두가 늘 그렇게 하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차 여행을 하면 신분증 검사나 등기를 하지 않는데 최근 들어서는 감시가 더욱 강화되어 고급 침대칸에 탄 고객들은 모두 등기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일반 침대칸을 이용했기때문에 불필요한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이 나라에 아직 많은 불안 요소들이 남아있고, 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반증해 줍니다. 물론 종교적,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은 다른 많은 활동들은 요즘엔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마다 정책과 개방의 정도에 차이가 있어서 어떤 지역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정황을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국인의 종교활동에 관한 정부의 정책도 매우 교묘해서 교회들도 공인교회와 정부의 간섭과 지도를 원하지 않는 비공인 (지하) 교회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제가 약 6주동안 거주하며 일한 도시에서도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편한 일과 모험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30일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몇 주간 더 일을 하기 위해 현지의 공안국에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십수년간 일해온 이 도시의 공안국 관리들은 저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해 저의 비자 신청을 거절한 장본인들이었는지라, 저는 그들과 직접 맞닥뜨리길 원치 않아서  다른 도시로 가서 여행비자 연장신청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30일 연장을 허락받았습니다. 얼핏보면 정부 관리들과 세상의 주관자들이 중요한 일들의 열쇠를 쥐고 흔드는 것 처럼 모두가 착각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는 우리 주님이시므로 우리는 크게 두려워하거나 조급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쪽마을 성경번역 팀은 이번에 마태복음 13장 부터 23장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며 여러번의 수정작업을 거쳐서 2차 번역을 마쳤습니다. 네 권의 복음서들에는 비슷하거나 꼭같은 내용들이 있어서 복음서들을 면밀히 비교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표현이 헬라어 원어 성경에서 꼭같거나 거의 비슷하면 동쪽마을 성경도 꼭같거나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각 언어마다 단어의 뜻의 범위가 같지 않아서 정확하게 따라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들을 참조하다보면 한글 개역본이나 중국어 화합본, 몇가지 영어 역본들은 매우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저희는 번역 문제 이외에도 철자법 논의로 또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재 동쪽마을 언어는 지방 정부에서 잠정적으로 허락해서 사용하고 있는 비공식 문자 체계가 있긴하지만 더 연구하고 개선할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다른 언어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소리 체계에 변화가 생겨서 어떤 소리 (발음)는 한 글자로 표기해야 할 지 두 가지 다른 글자로 표기해야 할 지 결정하기 모호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한 층 더 깊은 연구가 진행되고 의견들이 수렴되어 가장 적절한 철자법이 속히  정해지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동쪽마을 성경의 중요한 용어를 결정하는 문제와 예수영화 더빙에 관한 논의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서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동쪽마을 성경 번역 팀에는 저와 마을 청년 두 명, 그리고 한 미국인 동역자가 중심이 되어 일을 했습니다. 마을 청년은 마문정과 마허메인데 그들의 삶에 늘 복잡한 일들이 발생해서 둘이 함께 모여 일한 시간은 며칠 되지않고, 대부분은 한명의 언어조력자와 일을 했습니다. 마문정 형제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기독교인 자매와 헤어지고) 무슬림 처녀와 새로 결혼하라는 가족의 계속되는 압력을 단호히 거절하기로 마음먹고 핍박을 피해 동부의 먼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멀리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동안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다시 돌아와 번역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그가 낮에 일을 하고 나서 저녁에 거처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궁리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도시에 새로 지어 놓은 빈 집에 가서 거하기로 정하고 며칠을 그 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실 그 집에 거하는 것의 위험성을 어느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사건이 그렇게 쉽게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마형제의 부모가 집으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물론 그의 부모는 그가 어디에 갔다왔는 지, 지금은 무슨일을 하며 다니는 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나서 잘됐다 싶은 그의 부모는 최근 준비했다가 그의 반대로 파기되었던 혼인을 다시 성사시키려고 며칠 동안 그를 설득했지만 그의 결심이 단호한 것을 보고 대단히 화가났고, 그를 심하게 때린 후 가택에 연금해버렸습니다. 번역 사무실에서 일하던 우리는 마형제가 며칠동안 아무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마형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숨죽이는 소리로 화장실에서 몰래 전화한다면서 그의 아버지가 집바깥으로 나갈 자유를 주지 않아서 집에서 계속 노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정을 알고나서 우리는 일단 안도를 한 후 여러 지체들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한 1주일 쯤 지나서 마형제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고, 저희가 있는 사무실로 와서 함께 번역 일을 하면서 한 동역자의 가정에서 보호를 받으며 기거했습니다.            
가족의 전통과 민족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부모의 심정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또한 가족의 품을 떠나야하는 마형제의 아픈 마음도 이해가 갈 듯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치러야할 댓가가 매우 큰 현실입니다. 마형제는 아직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아내에 대한 확신은 있는 듯 합니다. 모슬렘 배경을 가진 한 사람이 확실하게 예수 믿기가 참 어렵고 때로는 오래 걸립니다.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번역 작업을 마친 후에 저는 다른 지역의 미전도 종족들을 조사하고자하는 한 교회의 단기팀과 합류하여 며칠 간 여행을 했습니다. 조사 팀은 먼 곳에 사는 소수의 민족들에게 까지 점차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이런 민족들 가운데는 믿는 사람들의 수가 아직은 미미하고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있지만 이런 추세로 계속 진행되면 머지 않아 땅 끝에 남아있는 민족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것 같아보입니다.  
그 후 저는 다시 장소를 옮겨 소수민족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들을 위한 헬라어 학습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3주간 합숙하며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저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소수민족 (모국어) 번역가들과 그 번역가들을 돕는 성경번역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헬라어 고급 문법(담화문법)을 가르쳤습니다. 어려운 내용이라 저에게 도전이 되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성경번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과정이었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준비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달이 넘는 일정을 마치고 달라스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뱅쿠버, 씨애틀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작은 민족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뱅쿠버에서는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저희 딸 보라를 잠시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라가 공부하고 있는대학에는 저희 선교회의 언어학 훈련을 담당하는 언어학과가 있는데, 그 곳에서 요청이 있어서 저는 동쪽마을 언어의 음운 체계와 문자 방안에 관한 소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여러가지로 유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해주신 동역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동쪽마을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가정들이 많이 늘어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내년 여름 이전에 저희 가정이 다시 현지로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적절한 비자 종류를 찾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기도부탁합니다. 동역자님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평강과 은혜가 더욱 넘쳐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