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하나님의 비전(49) 사 65:17∼25
2016. 10. 2 (일)

박영선 목사

1. 들어가는 글

(1) 목사님의 당구 실력은 1.000이다. 당구를 안 치시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목사님의 이 1,000이라는 실력은 우리나라에 프로 당구선수가 없을 때 놓으신 점수이다. 흔히 우리들끼리는 말한다. 당구 300을 치려면 집 한 채는 없애야 한다고. 그러니 목사님께서는 집 세 채는 없애시고 저 경지에 오르셨음이 분명하다.

(2) 10년 전만 해도 목사님의 주 종목 4구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교회 사람들, 그리고 신천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정말 적수가 없었다. 물론 목사님께서는 지금부터 30년도 더 전에 이미 1,000을 쳤었고 시중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였고, 10년전 까지만 해도 그 실력이 유지되었었다.

(3) 목사님이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특히 눈이 잘 안보이고 허리가 많이 아프신 이후, 남포교회 당구계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어중이떠중이들도 목사님께 도전을 했고 목사님은 서서히 전설의 1,000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았다. 더구나 2010년경부터는 우리교회 동우회에서 4구가 아닌 3구를(쓰리쿠션) 치게 되었고 3구에서 목사님은 그냥 선수 중 한 명이셨다.

(4) 몇 년이 지나고 목사님은 3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셨다. 지금 3구의 최고수는 아니지만, 고수 중의 한 명이시며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3구에서도 최고수가 되리라 믿는다.

(5) 당구 칠 때 목사님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 잘 지라는 것이다. 쉬운 일로 보이시죠? 아닙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치면 이기려고 하고 맞았다, 안 맞았다를 판정할 때 양보가 없다.

목사님은 당구 칠 때 대원칙이, 게임을 즐기라는 것이다. 상대와 경쟁하지 말고 자기가 시도한 샷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그것을 즐기라는 말씀이다. 또 한 가지 목사님은 맞았다, 안 맞았다의 다툼이 있을 때 공격자 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하셨다. 이 원칙은 대단히 덕스럽고 공평한 것이다. 당구에서는 서로 번갈아가며 공격자가 되니까. 그러나 우리는 당구장에서 자주 싸운다. 그거 맞았다니까!

2. 내용

가 서론

(1) 65장 1∼3절은 64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답을 하신 것이다. 64장에서 백성들은 출애급의 역사를 거론하면서 그때처럼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우리를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한다.

(2)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내가 언제 너희와 함께 하지 않았느냐?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라고 답을 하신다.

나. 우리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 사이에 있는 간극

(1) (롬 10:9∼21)을 보자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을 했지만, 값없는 은혜가 값싼 은혜가 되고 있음을 종종 본다. 회개와 영혼의 소생은 있었지만 아직 깊은 곳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2) 64장 1∼3절의 기도는 오늘날 우리의 기도와 같다. 하나님 왜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에 대해 65장 1∼3절로 답하신다.

나는 네가 나를 구하지 않을 때에도, 차지 않을 때에도, 부르지 않을 때에도 네게 답했고 너와 함께 있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증거이다.

(3) 하나님은 왜 출애급의 역사처럼 우리에게 확인과 보상을 안 해주시는가?

(하박국 1:2∼13)을 보자.

1) 하박국은 왜 기도를 안 들어주십니까? 라고 한다.(2절)

2) 하나님께서는 그 질문엔 답을 안 하시고 오히려 내가 바벨론으로 너희를 멸망하게 하겠다 라고 답을 하신다.

3) 하바국이 다시 묻는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신데 어떻게 악당들이 폭력을 사용하게 하신단 말입니까?(12절, 13절)

(하박국 2:1∼4)을 보자.

4) 하나님은 답하신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절)
여기에 이 믿음은 바로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답변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우는 믿음이다.

의인은 보상으로 살지 않는다. 안심으로 살지 않는다. 믿음으로 산다.

(4) (하박국 3:16∼19)을 보자. 하박국은 이렇게 답을 한다.

나는 내가 당한 재앙 때문에 내 몸이 떨리고 뼈가 녹는다. 그래도 좋다.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책임으로 나를 헌신하겠다.

다. 믿음의 완성

(1) (빌 2:5∼11)을 보자.

예수의 높으심과 하나님의 영광이 증언되어 있다.

하나님은 하시려는 일을 하나님 스스로 한 인생에 담아 구체화 시키셨고 한 존재가 되도록 하셨다.

그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다.

(2)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의 진정한 모범이며 하나님 창조의 실체를 예수께서 보이신 것이다.

(3)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구래서 우리의 충성과 현신을 기다리신다. 여기에는 유능함과 명예로움은 필요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다짐이 있기를 원하신다.

라. 새 하늘과 새 땅

(1) (롬 8:18∼25)을 보자. 이리와 양이 같이 있는 세상은 왜 필요한가?

만물이 죄와 사망 아래 굴복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과 자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를 짓자 하나님은 창조세계 자체를 저주하셨다.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와 창조계가 사망 아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우리의 완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항복하는 인생을 산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는 답이 되지 않으며 우리 영혼의 깊은 소원을 하나님이 채우시게 될 것이다.

마. 자유의 선택

(1) 순교나 헌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는 명분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자유인이며 자유인으로서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삶에서 갖지 못해 왔다.

(2) 그래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라고만 행각을 했지,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격려를 가질 수 없었다.

(3) (욥 42장) 인생은 쓸데없는 일에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힙니다. 이제 저는 티끌과 죄 가운데 앉아서 회개합니다.(아무 것도 없는데서, 최악의 조건에서)

(4) 티끌과 재 가운데서 티끌과 재로서 우리가 억울해 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나다.

3. 결어

(1) 하나님께서 내 앞에 서라, 내 눈을 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엉뚱한 곳을 본다.

(2)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조건과 모든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아멘.

4. 에필로그

(1) 가끔 사람들은 박 목사님 뵙기가 어렵다고 말을 한다. 옛날에 그랬을까? 지금은 결코 아니다. 주일날 뵈려는 사람들이 너무 일시에 몰릴 때 조금 기다릴 뿐 아무 때나 목사님은 뵙는 것은 오케이다.

(2) 목사님 방에 한 번도 안 들어가 보았다면, 그냥 노크하고 들어가면 된다. 지나칠 만큼 격식도 없고 의전도 없다. 다만 뵙는 시간은 좀 짧게 해야 한다. 일정도 많으시지만 몸도 썩 편한 편은 아니시다.

(3) 대면해서 얘기를 나누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설교를 선포되는 분위기를 지울 수 없지만 대화를 나누면 금방 몇 가지를 알게 된다.
첫째, 정말로 목사님이 많이 성화되셨다.
(옛날의 날카로움과 카랑카랑함은 없다)

둘째, 뜻밖에 인간적이시다.
(옛날엔 내성적인 목사님 성격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았다)

셋째, 우리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시다.(용서 바랍니다)
상대방의 말을 빨리 알아듣고 정확하고 깊이 있는 답을 하신 다.

(4) 당구 이야기를 살짝 곁들이라. 당신은 최고의 손님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