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하나님의 비전(41) 사 57:14∼21

박영선 목사

1. 들어가는 글

(1) 박 목사님께서는 언젠가 말씀하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가은이를 예로 드셨다. 가은이가 하는 노래를 잘 들어보면 발전이나 진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은이는 처음에 오리 노래를 할 때 오리 흉내를 잘 내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자 가은이는 정말 오리처럼 오리 꿱꿱 소리 내면서 노래를 했다. 어찌 보면 오리보다 더 오리 같았다.

그렇다. 어른인 우리들도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발전이 있어야 한다. 내 설교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발전하는 것 같다.

(2) 나는 처음 이사야를 하실 때에도 열심히 들었다. 지금은 더 열심히 듣는다. 설교의 내용이 깊어지고 양도 늘어나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냥 쓰윽 지나가기 때문이다.

(3) 이번 주일 목사님의 설교는 신학이라는 지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주신 설교였다.(외람되다고 생각되시면 용서하시라) 분명 이 설교는 광야 같은 인생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셨다.

2. 설교내용

가. 신자들의 질문
(1)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바벨론 포로라는 벌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귀환을 약속하시고 영광의 자리에 이끌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온 이스라엘이 겪는 혹독한 현실은 영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거친 거주민들을 대적해야 했고 추수하기는 어려웠으며 소득은 없었다. 점점 더 시달리고 지쳐갔다.

(2) 이스라엘은 당연히 질문한다. 왜 원칙과 심판을 초월하는 은혜가 없는가?

우리는 거의 원칙과 심판의 질서가 있는 세계에 머무른다.(1차적 세계관)

하나님은 여기에서 은혜로 우리를 회복시키고 영광을 주겠다고 하셨다.(2차적 세계관)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약속된 2차적 세계에도, 왜 1차적 세계가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가 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6장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다. 안식일은 아스라엘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구별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에서 배타적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자랑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킨다면 이스라엘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다 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배타적으로 소유했던 안식일이 오히려 이방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쓰인 것이다.

(4) 3차적 세계관은 여기서 설명이 된다. 롬 11:32을 보면 하나님이 일부러 불순종을 요구하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1차와 2차의 융합이 없어지자 우리는 기대와 실망, 감사와 자책이 공존하는 세계를 만난다. 성경은,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이해 못하는 거기서 일하신다고 가르친다.

나 3차적 세계관

(1)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얘기하신 부자가 하늘나라 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는 그가 부자라서 어렵다는 얘기가 아니다. 능력자도 못 간다는 뜻이다. 이 비유대로라면 가난한 자는 더 못 간다고 해야 한다.

(2) 그러나 롬 11:33∼36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기는 정말 어렵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1차와 2차가 묶이는 것을 이해 못하고 포기하며 적당히 산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책임이 실종되며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3) 욥 7:11∼21을 보라. 신자는 완전한 신앙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안 된다. 이 불가능은 무엇인가?

귀환한 이스라엘에게는 현실이 있었다. 인간된 한계가 있었다.

욥의 비명이나 우리의 비명이나 귀환한 이스라엘의 비명은 모두 같은 것이다.

이 비명은 내가 당하는 고난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지만 결국은 이것을 넘어서 진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4) (욥 7:17∼21) 내가 뭐 길래 나를 대적하십니까? 왜 대답도 안하십니까?

인간은 자폭으로 스스로의 정체성과 직면한다. 자폭과 비명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몸부림이다.
하나님은 비로서 답하신다.

너의 고통과 갈등과 모순을 해결해 달라구?
아니야, 너는 이것들을 뚫어야 한다.
너는 이 고난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 고난이 내가 너에게 의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 성경의 해답

(1) (시 40:1∼8) 다윗은 수렁에 빠졌다. 하나님은 수렁에서 다윗을 건지셨다. 그러나 다윗은 깨닫는다. 내가 받은 응답보다 내가 겪은 체험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아는 문제가 더 크다.

하나님은 누구시냐?
인간은 누구냐?

다윗이 말한 반석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 인간의 의미, 정신세계의 부요함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수렁이라는 고난을 통해 다윗을 이 반석 위에 앉게 하신 것이다.

(2) 우리는 죄를 다 극복한 것이 아니다.(시 40:12) 아직도 죄가 있고 재앙이 있을 때 기도한다.(시 40:17) 이 내용을 시 51:6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셔서 제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결국 율법이거나 제사이거나 우리 자신을 목적으로 한다.

라. 이사야 본문의 가르침

(1) 이스라엘 민족은 1차적 세계관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것은 자신의 한계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자를 말한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되는가? 고난을 통해서 알게 된다. 우리가 고난을 피하려면 죽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버리면 성경은 실패하는 것이 된다.

(2) 또 탕자의 비유를 보자.

1) 소비뿐인 세계 : 시간과 재산을 허비했다.
2) 생명의 세계 : 아버지 집에만 생명과 창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회개는 과거를 씻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다.

여기서 하나님이 물으신다.

?얘야, 소비뿐인 너의 세계에 있을래? 아니면 생명과 창조의 세계로 나아올래??

이 하나님의 질문을 듣고 우리는 뚫어내야 한다.

고난과 절망을 극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과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자책이 전부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힘드냐? 힘들지 않은 게 어디 있니? 그러나 그렇게 힘들어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명예로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겠니??
3. 결어

(1) 울지 마라.
(2) 걸어 나가라.
(3) 각자의 믿음을 살아라.
(4) 멋지고 고달프고 위대한 삶을 살아라.
(5) 따지고 보면 세상은 위대한 기회다.

4. 에필로그

(1) 오늘 설교에서는 세계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1차적 세계관 : 원칙과 심판의 세계관
2차적 세계관 : 은혜와 영광의 세계관
3차적 세계관 : 1차와 2차가 융합되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세계관

(2) 설교 끝나고 목사님 방으로 쫓아 올라갔다.

목사님, 3차적 세계관을 좀 설명해주세요.

1차가 있어야 2차가 있을 수 있는 거지.
2차가 있어야 3차도 있는 거고.

(3) 이해가 되시는가? 나는 잘 안 된다. 그래서 야단맞을 각오로 정리해본다.

『우리는 1차적 세계 속에서 너무 괴로우니까 2차적 세계를 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로 묶어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신다.(제3의길, 3차적 세계)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는 수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서』

(4) 이 어려운 설교를 2∼3번 더 하신단다. 두렵고 기대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