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갈3:26)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놀라운 사건에 기여한 율법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 불렀다(갈 3:24).? 그러나 일단 믿음에 도달한 후에는 더 이상 몽학선생의 가르침 아래 있지 않다(3:26). 하지만 이것은 율법의 권위와 역할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의 역할로서 “몽학선생”의 기능이 종료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구원 이후에도 율법은 엄연히 존재한다. 구원받은 자들을 위한 영혼의 거울로서 그 권위는 여전하다. 전에는 믿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면 지금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가는 “트레이너”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잡이이다. 구원 이후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성숙의 여정을 위한 절대적 기준인 율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비유로서 항공기의 자동항법장치가 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 LA 공항으로 가는 동안 똑바른 직선으로 운항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로 직선운항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몇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진 항로를 따라 오는 동안 각 구간 내에 그어진 직선을 중심으로 지그재그 비행을 한다. 좌우로 번갈아가며 치우치는 비행이다. 쉬임없이 비행정보를 모으는 컴퓨터는 구간 내 그어진 직선항로에서 기체가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계산해 내어 비행방향을 좌우로 번갈아 바꾼다. 이렇게 비행의 궤적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잇는 직선을 중심으로 지그재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을 목적지로 하는 거룩한 변화의 항로를 가고 있다. 그 항로는 똑바른 직선일 수 없다. 좌든우든 언제나 치우치게 되어있다. 얼마나 치우쳤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율법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행정보를 수시로 모으는 컴퓨터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할 이유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을 율례와의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더 멀어지지 않도록 자동비행항법 장치처럼 삶의 기수를 좌우로 번갈아가며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여정도 똑바른 직선이 아니라 좌우치우침을 반복하며 전진하는 지그재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의로움의 근원이 아니다. 믿음에 닿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몽학선생” 아래에 있지 않다 (갈 3:25).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품에서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있어 율법은 결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 율법에 기대어 주야로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이다 (시편 1:1-2). 다시 말하자면,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묵상하고 준행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사람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동기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신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신다.

바둑 격언에 “고수가 되려면 정석을 잊으라”가 있다. 바둑에서 정석이란 축구로 치자면 공을 차는 법, 멈추는 법, 패스하는 법, 컨트롤 하는 법 등의 기초적인 기술이다. 그러니까 “고수가 되려면 정석을 잊으라”는 말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기본기를 잊어버려라”이다. 기본기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완전히 몸에 배어서 무의식적인 반사동작이 나오도록 “기본기술을 철저하게 몸에 익히라”는 뜻이다. 기본기를 연마했다해서 반드시 골을 얻는다거나, 게임에 이긴다거나,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초적인 기술을 익히지 않고서는 축구선수라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신앙의 여정에도 “기본기”가 있다. 율법이다. “거짓말을 좀 해도 영생을 누리는데 문제가 않된다”가 아니라 그러므로 더욱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므로 논문표절해도 천국가는데 지장없다”가 아니라 그러므로 더욱 진실되어야 한다. “구원받았으므로 세금을 좀 덜내도 지옥가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러므로 더욱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신앙의 기본기이다. 정석을 잊어버려야 고수가 된다. 신앙의 기본기?율법?을 잊어버려야 품위있고 멋진 그리스도인이 된다. 율법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의식함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익혀야 한다. 공이 날라 왔을 때 자동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발이 나가 골대를 향해 슛을 날리는 축구선수 처럼.

품위있는 그리스도인이란 율법이 몸에 배인 사람이다. 의식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슛을 날리는 것이 센터포드의 희열인 것처럼 그러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신앙의 삶은 든든한 기본기?잊혀진 기본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